양주시의 역사, 문화 유적을 찾아서




양주는 안동과 함께 4개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을 소유한 조선 최고의 문향(文鄕)이었으며, 국가 무형문화재 두 종(양주 별산대놀이, 양주 소놀이굿)과 도지정 무형문화재 두 종(양주농악, 양주상여와 회다지소리)을 보유한 전통의 고장이자 무수한 국보, 보물, 유적을 지닌 역사의 터전이다.  

홍정덕(양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양주(楊州)>라는 지명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전인 935년 견훤의 고려 망명 기사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지명은 현재의 양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한강의 북안 일대,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서울을 포괄하는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양주는 고조선, 마한의 영토였고, 온조는 바로 이곳, 양주 땅 하북 위례성에 백제를 건국하였으며 근초고왕이 이 지역을 다시 수도로 삼아 대륙 진출의 근거지 삼았었으나 광개토대왕, 장수태왕이 한성백제를 멸망시키면서 고구려에 점령되어 약 80년간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어 신라에 점령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지 역할을 하였고 신라군이 양주 매초성 전투에서 당군을 대파함으로서 당의 침략 야욕을 꺾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새로이 3경의 하나로 부상하는 남경(南京)의 일부가 되었고 한강 이남의 광주(廣州)와 함께 양광도(楊廣道)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수도권 근기(近畿)가 되었다가 조선 건국에 즈음하여 한양(漢陽)에 천도하면서 현재의 양주지역이 양주라는 지명을 계승하게 되었다.


  양주는 안동과 함께 4개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을 소유한 조선 최고의 문향(文鄕)이었으며, 국가 무형문화재 두 종(양주 별산대놀이, 양주 소놀이굿)과 도지정 무형문화재 두 종(양주농악, 양주상여와 회다지소리)을 보유한 전통의 고장이자 무수한 국보, 보물, 유적을 지닌 역사의 터전이다.


  그러면 잘 알려진 양주의 역사 문화 유적을 찾아 떠나 보기로 하자.



양주 관아지와 양주별산대 공연장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주역에 내리면 양주시청 방향으로 떠나는 다양한 노선의 버스를 탈 수 있다. 이 버스를 타고 3 정거장만 지나면 양주 관아지에 닿을 수 있다.

 양주의 읍치는 본래 한양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1394년(태조 3)에 도읍을 송도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동소문 지대인 대동촌(大東村)으로 옮겼고, 다시 견주(見州)의 옛 터인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다른 지방의 관아지처럼 이곳에도 관아의 정문인 삼문(三門)을 들어서면 임금의 전패를 모시고 있던 객사(客舍)와 수령인 양주 목사가 머물며 행정을 펼치던 동헌(東軒)과 내아(內衙), 그리고 아전들의 사무소인 질청(作廳), 양주 양반들이 모임을 갖던 향청(鄕廳) 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아울러 경기 중영(中營)으로서의 지휘소 역할을 하던 병영(兵營)과 행형장(行刑場) 등 번듯한 규모의 관아가 있는데, 전란과 병화를 겪으며 모두 훼손되어 현재는 동헌인 매학당(梅鶴堂)만 복원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정조 임금이 광릉(光陵) 참배 길에 양주 관아를 찾아 머물면서 활을 쏘던 사실을 기념하여 세워진 어사대비(御射臺碑)와 역대 양주 목사의 선정비를 모아 전시한 비군(碑群)이 당시의 양주 관아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양주별산대 놀이 전수관


  양주 관아지를 답사했으면 바로 옆에 위치한 <양주별산대놀이> 전수관을 찾아 보자.

양주별산대놀이는 종묘제례에 이어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민중 문화유산이다. 본래 산대놀이는 궁중에서 연희되던 나례(儺禮)로서 특히 동지(冬至)에 행해지던 수세(守歲) 행사로 중시되었고 외국의 사신이 오면 이를 맞이하는 연회(宴會)에서도 성대히 거행되었다. 양주에서는 궁중 나례를 담당하던 녹번동의 연희패를 초빙하여 공연하게 하였는데 이들 산대패들이 지방 공연을 핑계로 자주 공연 약속을 어기게 되자 스스로 탈을 제작하고 연희를 익혀 자체로 공연하게 되었으며, 이를 산대(山臺)와 구별하여 별산대(別山臺)라 하였다. 이후 서울 지역의 본산대의 맥이 끊어지면서 산대놀이의 정통을 계승한 양주 별산대 놀이가 주요 무형문화재로 정착되었다.

  양주시에서는 이 별산대의 보존 계승을 위하여 공연장을 겸한 전수관을 마련하고 이를 교육과 공연의 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2011년에는 경기도 민속예술제가 이곳에서 성대히 진행되기도 하였다.

한편 이 별산대 놀이마당 한켠에는 자료관이 마련되어 있어 문화관광 해설사가 상주하며 양주별산대 놀이의 내용과 역사, 그리고 각종 탈과 의상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양주향교


  양주향교도 역시 양주관아지, 양주별산대놀이 마당과 같은 이웃에 위치한다.

  양주 향교는 조선 건국 이후 양주지역의 인재들을 교육하고 공자를 비롯한 여러 유현(儒賢)을 제사하여 문풍(文風)을 진작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895년에는 양주에 소학교를 설치하라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이 향교를 양주소학교 건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6.25 동란 중 향교건물 전체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유림(儒林)의 정성을 모아 옛터에 건물을 재건하여 현재 춘추(春秋) 제향(祭享)과 옛 양주 권역인 양주시, 의정부시, 남양주시, 동두천시 유림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양주 향교에 방문하면,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관광객을 맞이하며, 고풍어린 건물 대성전과 동, 서재와 함께 낭랑한 송서(誦書)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회암사지


  회암사로 가려면 전철1호선 덕정역에 내려 78번 시외버스를 타야한다. 양주역에서는 회암사로 가는 교통편이 택시 밖에는 없다. 버스를 타고가다 회암사지 정류소에 내려서도 마을 안길을 1Km정도 걸어야만 조선조 최대의 국가 사찰이었던 <회암사지>에 도착한다.

  고려시대에 인도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하고 고려 말에는 나옹(懶翁)선사가 주석하며 이 절을 중창하였다. 조선 개국 이후에는 무학(無學)대사가 머무는 한편 무학과의 유별난 인연으로 왕위에서 물러 난 조선 태조(太祖)가 거처하기도 하였다. 이후 효령대군이 이절에 정성을 들였고 문정왕후가 이절의 주지인 보우(普雨)와 함께 불교 중흥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정왕후 사후 사세가 퇴락하다가 결국 화재로 사찰 전체가 소실되고 말았다.

  회암사터에 들어가다 보면, 회암사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은 회암사 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약 5,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2012년 7월 중에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면 회암사지를 만난다. 현재 회암사지에 남아있는 건물은 없으나 장려한 계단(階段)과 기단(基壇) 그리고 열 지어 배치된 주춧돌(柱礎) 만으로도 거의 왕궁 규모의 어마어마했던 절의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면 좌편에 위치한 2기의 당간지주와 절터 북쪽 오른편의 부도 역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한다. 절터 안으로는 출입할 수 없으나 사지를 끼고 오르면 절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고 이 전망대 앞에 문화관광해설사가 상두하고 있어 회암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회암사



 

  회암사지에서 산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500m 정도 오르면 새로 지은 회암사를 만나게 된다. 물론 조선시대 회암사가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당시에는 이곳 새 회암사가 자리 잡은 지역도 역시 회암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찰 경내에는 보물 제387호인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와 보물 제389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檜巖寺址雙獅子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회암사지부도탑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다양한 유적을 만나 볼 수 있다.

  새 회암사는 회암사 옛터 일부에 자리 잡고 있어 산지 지형을 따라 건물이 배치된 고로 일반적인 사찰 건립 양식, 즉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 누대, 탑, 금당, 강당이 일정한 방향을 따라 배치된 규모 있는 사찰은 아니다. 조촐한 건물들의 뒤로 언덕에 오르다보면, 지공, 나옹, 무학 세 선사의 부도와 탑비가 오랜 풍상을 견디며 고즈넉이 서 있다. 간결하고 우아한 형식의 지공과 나옹의 부도와는 달리 무학의 부도는 조선 태조의 왕사답게 구조와 조각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아울러 무학대사 부도 앞에 서있는 쌍사자 석등도 조각이 아름답고 비례가 잘 정돈된 우수 문화재이다.

 



권율장군 묘


  권율장군묘는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다. 이곳을 찾으려면 서울 구파발에서 양주 장흥으로 오는 버스를 타거나 의정부에서 구파발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장흥에서 내려야 하나 장흥 입구에서 권율장군묘까지 포장도로로 약 3~4㎞를 더 가야하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묘는 큰 길가 접도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권율장군은 이순신, 원균과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한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 3명 중 한분으로 우리에게는 행주대첩의 주인공이자, 이항복의 장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묘역에 들어서면 먼저 공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과 재실을 만날 수 있고, 이어 산기슭을 따라 중턱까지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공과 두 명의 부인을 모신 3기의 무덤을 만난다. 상석과 묘전비 그리고 총각머리의 동자석을 갖춘 단아한 무덤 앞에서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헌신한 한 위인의 발자취를 확인하며 감개에 젖을 수 있다. 아울러 묘역에서 바라보는 앞산의 웅장한 경치와 울창한 숲의 정경에서 아지직도 변함없는 공의 기개를 엿보게 된다.

  한편 권율장군 묘역 일대는 양주시에서 시민을 위하여 조성한 장흥테마파크가 자리 잡고 있어 근, 현대 미술품들과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잘 준비된 위락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들과 함께 역사 탐방은 물론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적합하다.

  지금까지 양주시의 유명 역사, 문화 유적지를 살펴보았다. 양주시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적지들이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와 함께 양주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함으로서, 우리 문화유산 및 관광자원에 대한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기억에 남는 체험관광을 제공하고자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Posted by 경기도문화원연합회